D67호 건물 및 지하벙커는 베트남 노동당의 주요 방침과 전략이 전국은 물론 인도차이나 전역의 전장에 전달되던 장소였다. (사진: 폭 타이/vovgiaothong.vn) |
“1967년 미군의 북부 파괴전이 본격적으로 확대되자 중앙군사위원회와 총사령부는 미군의 폭격에도 견딜 수 있는 안전한 건물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인근의 기존 사무공간에서 곧바로 대피 가능한 형태로 D67호 건물이 건립되었습니다. 해당 건물은 폭탄이 투하되더라도 두꺼운 벽체와 견고한 출입문, 방음, 방사능 및 화학물질 차단 기능 등을 갖추어 고도의 보안과 안전성을 확보하였으며, 주요 회의 전용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실용적이며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설계되었고, 1967년에 준공되어 'D67호 건물'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습니다.”
베트남 군사역사연구원 전 부원장인 응우옌 마인 하(Nguyễn Mạnh Hà) 대령 (사진: VOV) |
D67호 건물과 동시에 건설된 D67호 지하벙커는 건물과 불가분의 핵심 공간으로 긴급 상황에서 예비 지휘본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벙커는 3단의 계단을 통해 하강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건물과 연결된 두 개의 통로를 통해 이동이 가능하였다. 전시 상황을 고려하여 환기 시스템과 조명 설비 또한 특수하게 설계되어 있어 가혹한 전쟁 환경 속에서도 지속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D67호 건물은 굴복하지 않는 항전의 정신, 어떠한 역경에도 적응해 온 민족의 저력, 자주 독립을 향한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사진: 폭 타이/vovgiaothong.vn) |
“1975년 대공세가 개시되자 정치국과 중앙군사위원회의 회의들이 연이어 이곳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마침내 D67호 건물은 1975년 4월 30일 남부 해방 승전 소식을 맞이한 역사적 장소가 되었습니다.”
D67호 건물은 단순한 역사적 유적지를 넘어, 굴복하지 않는 항전의 정신, 어떠한 역경에도 적응해 온 민족의 저력, 자주 독립을 향한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현재 건물과 벙커의 내부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특별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물들로 전시되어 있다. 회의실에는 당시 사용되던 책상과 의자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회의 참가자의 이름과 직책이 적힌 명패, 작전 지도, 지휘 통신 장비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하노이 탕롱유산보존센터 응우옌 타인 꽝(Nguyễn Thanh Quang)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상, 의자, 전화기 등 모든 유물과 건축 구조물들이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 시기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게 해줍니다. 이러한 혁명 유적은 지금도 ‘살아 있으며’, 역사적 이야기를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선대들이 어떻게 온 힘을 다해 싸웠고 오늘날의 독립을 이루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소중한 자료입니다.”
보 응우옌 잡 대장의 집무실 (사진: 폭 타이/vovgiaothong.vn) |
1975년 이후 이 벙커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2017년부터 현재까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관람이 가능해졌다. D67호 건물과 지하벙커는 국내외 많은 방문객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베트남의 군사 역사를 이해하고자 찾는 대표적인 역사 탐방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