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부터 1975년까지의 항쟁기지는 닥락성 항쟁기지(남쪽), H9 끄롱봉 기지, H9 기지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왔다. (사진: 흐 씨우/VOV) |
“당시 닥락성 노동당 상임위원회의 첫 회의에서는 두 가지 안건이 논의되었습니다. 첫째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남부 지역 거점을 사수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이를 기반으로 하여 점진적으로 성 전체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완전한 항쟁기지로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100세에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닥락성 당위원회 전 부서기였던 레 찌 꾸옛(Lê Chí Quyết) 할아버지는 본 기지에서의 10년간의 활동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사진: 흐 씨우/VOV) |
“저는 1965년에 이곳에 들어왔고 해방되는 날까지 정확히 10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이들도 성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유격전 운동과 끄롱봉 지역 혁명 운동 속에서 성장한 영웅 이언(Y Ơn), 인민무장역량영웅인 아마레(Ama Lê) 등도 모두 이 지역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다시 찾으면 동지동무들이 생각나고 형제들과 주민들 그리고 전장의 기억이 떠올라 벅찬 감정을 느낍니다.”
극심한 전쟁 상황 속에서도 쯔양신 산기슭 아래에 자리한 마을의 주민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항쟁기지를 지키고 해방 지역을 확장하였다. 양마오(Yang Mao)면 므낭정(Mnang Dơng) 마을, 끄뿌이(Cư Pui)면 닥뚜오르(Đắk Tuôr) 마을, 호아퐁(Hòa Phong)면 흐응오(H Ngô) 마을 등지의 주민들은 혁명을 위해 기지를 은폐해 주었다. 이 덕분에 닥락성 당대회 3차례가 안전하게 개최될 수 있었다. 호아퐁면 흐응오아(H Ngô A) 마을 주민인 이 수옴 니에(Y Suôm Niê) 씨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맡은 일을 수행했습니다. 대나무 말뚝을 깎는 일도 분담해서 아이는 100개, 어른은 1,000개씩 맡아 적과 혁명군 경계 지역에 설치했습니다. 또 카사바를 심어 수확한 것을 잘게 썰어 말린 후 군인들에게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하 응옥 다오 선생님 (사진: 흐 씨우/VOV) |
2017년부터 닥락성 항쟁기지(1965~1975년)는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가역사유적지로 공식 지정되었다. 이후 2023년 말까지 호아레(Hòa Lễ), 호아퐁(Hòa Phong), 끄뿌이(Cư Pui), 양마오(Yang Mao), 끄즈람(Cư Drăm) 등지에 위치한 39개 지점이 추가로 기지 유적지로 인정되면서, 이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확고히 하였다. 끄롱봉현 인민위원회 이 특 에반 (Y Thức Êban) 부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곳은 저희가 혁명 전통을 계속해서 계승하고 교육할 수 있는 핵심 장소입니다. 특히 청소년 세대를 대상으로 한 교육에 중점을 둘 계획입니다. 앞으로는 관광 발전과 역사적 가치의 보존 및 계승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전통교육 활동과 선열들의 독립·평화를 위한 희생에 대한 감사 행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반세기의 독립 세월을 지나, 옛 흔적들은 오늘날 역사 유적으로 남게 되었으며, 이는 끄롱봉 주민들에게 있어 선대의 용감한 투쟁의 역사를 기리는 자부심이자 소중한 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